[이 아침에] ‘할빠’의 시간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는 ‘할빠, 할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손자 손녀의 육아를 책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할빠, 할마라고 하는 모양이다. 요즘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끼는 시대이다. 6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랑 같이 있어도 언뜻 보면 좀 나이 든 아빠, 엄마처럼 보이니 이런 신조어까지 생겨났나 보다. 지금 세상은 어디나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다보니 시간상으로 좀 여유가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돌보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다. 3년 전 첫 외손녀를 보며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이번에 둘째 손녀가 태어나면서 나도 ‘할빠’ 대열에 합류했다. 아기 아빠는 출근하고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은 아직 몸 추스르기도 어려워 큰 손녀를 돌보는 건 거의 우리 부부의 몫이 됐다. 사위 일 때문에 딸 가족이 외국에 살 때는 같이 살 기회가 생긴다면 예쁜 손녀에게 그림책도 읽어주며 재미있게 노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가끔 화상 통화로나 얼굴을 보고 동영상으로 손녀의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는 너무 아쉬움이 컸던 탓이다. 올해 초 이곳으로 딸네 가족이 이주해 오면서 손녀를 직접 안아주고 놀아주며 그림책도 읽어주는 상상이 실현되는 행복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세살이 다 돼 가는 손녀를 돌보는 게 마냥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울고불고 떼쓰는 건 다반사인데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놀이터에서 몇 번 따라다니다 보면 체력이 금방 바닥이 난다. 요즘은 자녀들이 혼기가 지나도 결혼을 미루고, 설사 결혼하더라도 아기를 잘 가지려 하지 않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되는 일도 벼슬을 받기처럼 어려운 일이 됐다. 주위 친구들 경우를 봐도 손주를 못 본 친구가 더 많은 터라 친구들 모임에 가서도 손녀 자랑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사실 손자 손녀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도 한때는 틈만 나면 손주 자랑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좀 성가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들어 할빠, 할마 노릇하다가 몸도 망가지고 자녀들과 사이도 안 좋아지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늙어서 다시 육아에 시달리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노후의 삶을 즐기려던 계획이 어긋나서 당황스럽다는 노년들의 볼멘 목소리도 들린단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랑 노는 것도 잠깐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학교 들어가고 조금 지나 10대만 돼도 친구들을 더 찾지, 할아버지 할머니랑은 잘 놀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금 축복처럼 주어진 이 ‘할빠’의 시간을 즐기자. 아직은 뛰어다니고 손녀를 번쩍 들어 안아 줄 체력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오늘도 젊은 할빠는 놀이터로 공원으로 달려간다. 송훈 / 수필가이 아침에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자 손녀 주위 친구들